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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던 어느 날, 아파트 몇 층 아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타면서 내게 꾸벅 인사하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할머니! 할머니는 친구 몇 명 있어요?”
기습 질문에 허를 찔린 나와 아이의 보호자가 당황해하는 사이 아이가 한 손을 활짝 펴면서 자랑했다.
“나는 어린이집에 친구가 다섯 명이나 있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우와~ 그렇게 많아? 정말 좋겠네” 전북대학교 국가장학금 하고 맞장구를 쳐준 뒤 손 흔들며 헤어졌지만, 난생처음 할머니라 불린 마음은 폭탄을 맞은 듯 얼얼했다. 할머니라니. 50대 후반에 할머니라니. 하긴, 이미 손주를 본 또래 친구들도 있으니 할머니 맞지 뭐…. 피식 웃으며 스스로 위로해도 묘하게 부끄러운 기분이 마음 바닥에 고여 있다. 꼴사납게 젊은 척하지 않고 잘 늙어가리라 다짐하면서도 속으론 내가 나이보 저축은행직장인신용대출 다 젊어 보인다고 은근히 자부했던 이중성이 아이의 정직한 눈으로 까발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칠순을 한참 넘기고도 밖에서 ‘할아버지’라 불리면 언짢아하셨다.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게 뭐 어때서 저러시나 했는데 이제 그 심정을 알겠다. 젊음을 떠받드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늙어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안티에이징’이 개인사업자정부지원대출 시장의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삶의 자세로 확장된 사회에서 늙어 보인다는 말은 마치 자기관리에 실패했다는 비난처럼 들린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가 모두에게 칭찬인 이유는 나이 많음이 결함이라는 확신이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늙음에 대한 이런 태도에는 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늙음을 혐오하는 모든 사람은 운 좋게 계속 살아간다면 성년의날할인이벤트 언젠가는 다 자신이 혐오하는 존재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늙음에 대한 혐오와 낙인은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결국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자기혐오를 안고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여성학자이자 노년학자인 마거릿 크룩섕크가 ‘나이듦을 배우다’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연령차별주의에 대한 날 선 더케이저축은행 인식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처럼 두려움을 안고 노년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맞춤한 나이듦 입문서라 할 만하다. 노화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할머니라 불린 충격에 어질어질하던 내겐 그중에서 내면화된 연령차별의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가령 실제보다 젊은 척하면서 자기 나이를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연령차별주의가 취하는 가장 은밀한 형태다. 늙음이 열등하다는 메시지를 내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몸만 늙고 마음은 늙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고유한 통찰력을 우리 손으로 뭉개버리는 자기분열 행위”라고 짚는다.
속도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느린 동작을 열등하다고 인식하는 것도 내면화된 연령차별이다. 어머니의 병원 진료에 동행할 때 아픈 당사자 대신 내가 의사와 대화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노인의 말은 두서없고 장황할 것이며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거라고 간주한 편견의 발로 아닐까. 노인에게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어투를 사용하는 것도 노인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연령차별의 하나인데,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아이 다루듯 어르던 내 태도도 부끄럽게 떠오른다.
“긍정적 고정관념을 소환하지 않고도 수치심이나 사과 없이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늙는 일도 배워야 한다”고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연령차별의 근거가 되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두룩하고, 긍정적 요소가 포함된 고정관념에도 편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남성 노인에 대한 긍정적 고정관념은 이를테면 분석력, 창의성이 아니라 지혜와 인자함을 강조하기 일쑤고, 여성 노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강인함이나 직업적 성취보다 따뜻함, 유순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래 살았다고 지혜나 도덕적 성숙, 따뜻함을 자연히 갖추리라 기대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요즘엔 ‘귀여운 할머니’가 꿈이라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것도 노인을 지혜, 따뜻함의 속성과 관련짓는 노화에 대한 낭만화 작업과 비슷해 보인다. ‘귀여운 할머니’ 바람은 한국뿐 아니라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일본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고령사회 진입 전후 ‘귀여운 할머니’가 여성 노인의 이상적 이미지로 떠오른 현상을 보면 노년의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과 불안이 동시에 읽힌다. 무자비한 외모 지상주의와 연령차별이 유독 여성에게 가혹한 사회에서 꾀죄죄한 노후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와 동시에 의존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심술궂거나 까칠하지 않아 돌봐주기 수월한 노인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불안 말이다.
굳이 긍정적 고정관념을 소환하지 않고도 수치심이나 사과 없이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늙는 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첫 시작은 내 안의 연령차별적 의식을 계속 점검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된 기대와 억측들이 슬금슬금 피어올라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어깨와 무릎이 쑤시는 통증이 찾아올 때면 피할 수 없는 신체적 노화에 암담해지지만, 아무리 쇠락에 직면하더라도 노화에 대한 강고한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성장을 상상해야 한다. 미래의 자신과 불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어떻게 통증까지 사랑하겠는가. 미래의 날 사랑하려 하는 거지.
전 여성가족부 차관
‘나이듦을 배우다’(마거릿 크룩섕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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