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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올해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잠시 스쳤던 인연과 항상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시기다. 모바일 메신저로 간단하고 쉽게 연락하는 시대지만 진심을 표현하기엔 직접 쓴 손 편지만 한 게 없다. 편지가 주는 감성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주목해보길. 11월22일 충북 충주 금가우체국 안에 있는 편지 쓰기 카페 ‘아무것도 아닌 곳’을 찾았다.
1년 뒤 새마을금고적금금리은행 발송되는 느린우체통이 카페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금가우체국 왼쪽 끝 작은 방엔 커피향이 가득하다. 2018년 문을 연 카페 ‘아무것도 아닌 곳’은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이다. 33㎡(10평) 크기의 아담한 내부는 포근한 분위기와 동시에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의 전세 계약 해지 흔적이 느껴진다. 카페는 원래 우체국 집배실이었던 곳을 개조해 만들었다. 옛날에 쓰던 우편함·책상과 집배원이 쓰던 집배지 등이 카페 소품으로 활용돼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장소가 조각처럼 남아 있다. 이곳을 방문한 젊은 손님들은 신기한 눈으로 카페를 둘러본다. 옛 우체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부친상경(아버지가 너 보려고 서울간다)’ ‘기쾌유(쾌유를 2금융권금리 기원합니다)’ 등 글자수에 따라 가격이 달랐던 전보를 떠올리며 한마디씩 던진다.
우체국 왼편으로 돌면 나타나는 카페 안내판.
카페엔 편지 메뉴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우표가 포함된 관제엽서, 일반엽서, 편지지 공동담보해지 세트, 우표를 각각 구매해 자유롭게 편지를 쓸 수 있다. 예약을 하면 야외에 있는 카라반에서 레코드(LP)를 통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편지 쓰기에 몰입할 수 있다. 다 쓴 편지는 우표를 붙인 후 입구에 있는 느린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 발송된다. 카페 주인장인 박진아씨(43)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결혼한 후 귀촌해 남편이 물려받은 별정우체국 한편에 할인반환금 카페를 열었다. 우체국 이용자가 줄어 우정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을 극복해보자는 목적이었다. 그는 매월초 우체통에 모인 편지를 차례로 발송한다. 우체통에 모이는 편지는 한달에 20∼30통 된다. 매달 차이가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찾는 이가 많단다.
카페 한쪽에 옛날 금가우체국 집배실에서 쓰던 책상. 편지지를 꾸밀 펜과 문구류가 준비돼 있다.
“일반우편은 도착하는 시간이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문득 배달됩니다’라는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어요. 우편함만 잘 확인해달라고 부탁드리죠. 부모님이나 연인한테 보내는 분도 많고 젊은층은 1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여요.”
편지지 세트를 주문하면 편지지·봉투·스티커·우표 등이 제공된다.
편지 쓰는 손님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봉투에 주소를 쓰는 방법’이다. 박사장은 “나이가 어린 손님들은 주소를 왜 써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며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에 상대방과 자신이 있는 위치에 대한 개념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편지를 보내는 게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편지 쓰기 주의사항을 책갈피로 만들어 제공하고, 종종 인근 학교에 편지 쓰기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강원 속초 복합문화공간 ‘메이트힐 카페’에 설치된 느린우체통에 관광객들이 편지를 넣고 있다. 충주=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우정사업본부
최근 편지 쓰기가 특별한 이벤트로 부상하며 편지를 주제로 한 이색 공간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1년 뒤 배달해주는 ‘느린우체통’은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강원 속초 복합문화공간 메이티힐 카페, 대구 김광석거리, 제주 카멜리아힐 등 전국 명소 300여곳에 설치돼 있다.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지역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운영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과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편지가게 ‘글월’엔 이색적인 편지용품을 판매 중이다. 이곳에선 ‘펜팔서비스’도 운영하는데, 1만원을 내면 편지지와 필기구를 제공하고, 편지를 써서 접수하면 누가 쓴지 모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한통 가져갈 수 있다. 강원 강릉에 있는 작은 독립서점 ‘강다방 이야기공장’은 다양한 서적과 헌책을 판매하면서 편지를 쓸 수 있는 ‘익명 유리병 편지 펜팔’과 ‘1년 후 시나미(‘천천히’라는 뜻의 강원지역 방언) 가는 편지’로 색다른 경험도 제공한다.
1년을 돌이켜 보며 손으로 한글자씩 눌러쓴 문장을 모아 편지를 보내보자. 보내는 사람은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받는 사람은 기다리던 편지가 우편함에 깜짝 선물처럼 꽂히기까지 이같은 기다림의 과정이 감동으로 전달돼 따뜻함이 더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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